수락산 길목에서 마주한 시간의 흐름

 오랜만에 전철을 타고 당고개역에 내렸다.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마음처럼,
수락산의 품에 안기는 발걸음이 조심스레 이어졌다.

학림사와 용굴암으로 향하는 산길은
벌써 화려한 꽃들과 연두빛 잎사귀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
산새들 지저귀는 목소리,
그리고 바람에 부서지는 햇살 한 조각까지,
모든 것이 나를 환대해 주는 듯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니
오래전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이었던 분을 만났다.
한때 상가 안 작은 가게에서 분주히 김밥을 말고,
따끈한 분식을 준비하며
성실히 살아가던 부부였다.
우리 가족이 특히 좋아했던 그 집의 야채김밥 맛은
아직도 입 안에 선명하다.

"이젠 모든 일 접고, 등산하며 건강 챙기고 있어요."
짧은 인사말 뒤로, 세월이 쌓아올린 담담함이 느껴졌다.
서로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네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산을 내려오다,
한때 이 산자락에서 양봉과 닭을 키우던 분도 보았다.
닭들이 능선을 자유롭게 뛰놀고,
사료 한 움큼이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포장 흙길을 따라 걷던 그 시절,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어 어울리던 시간이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어버렸다.

이제는 길도 단단히 포장되고,
닭 대신 고요한 산새 소리만이 남았다.
산과 나무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고,
예전 같지 않은 근력을 체감하며
조금 더 숨을 고르며 걷게 된다.

시간은 이렇게 스쳐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갗에 스미고,
마음 구석구석에 고요히 내려앉는다.

산을 오르며 느낀 작은 떨림,
반가운 재회,
흐르는 세월과 그 안에서도 묵묵히 이어지는 삶의 숨결.

오늘, 이 수락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길을 걸어가야겠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